외교정책의 형성과정에 미치는 여론의 역할에 관하여 신뢰할 만한 지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론과 외교정책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여론-정책 간의 연결고리가 되는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단서를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국가에서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내 여론의 역할을 찾기는 쉽지 않으며, 중국과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역할을 찾기란 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중국은 국내 여론이 정책 결정(특히 외교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내 여론이 갖는 상대적 중요성은 증대되어 왔다. 첫째,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국내 여론을 주도하는 엘리트 집단의 층이 두터워졌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외교정책을 주도하는 소수의 엘리트가 정책 결정의 여론을 형성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정책 결정 엘리트, 전문가집단, 지식인 등이 광범위한 층을 형성하고, 독자층을 가진 대중매체에 의식적인 기고 혹은 저술 활동을 통해 외교적 현안에 대한 의사 표현을 상대적으로 활발히 개진한다. 환경, 무역, 금융, 군축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참여와 활동은 이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했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여론 주도층에 대한 중요성을 느낀 외사 영도 소조는 1998년 전문가집단에 대한 리스트를 요청한 바가 있으며, 장쩌민은 25명의 전직 대사들로 이루어진 자문그룹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이들의 전문적인 식견을 활용하려는 차원이었지만, 이들이 외교정책에 대한 국내 담론 생산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은 이들의 영향력이 증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둘째, 국내 여론의 중요성은 중국 정부 혹은 공산당 핵심 서클의 지도자들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여론의 향배에 주의를 기울이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이 많은 고정 시청자를 가진 텔레비전의 시사 프로그램을 보거나, 논란을 야기하는 간행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대중의 정서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대중의 여론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국내 정치의 안정을 중시하기 때문인데, 국유기업의 대량 해고와 실업문제가 갖는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폭발성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보수적인 경제정책으로 선회하기도 한다. 중국의 WTO 가입 과정에서 드러났던 경제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듯한 중국 정부의 보호주의적 태도는 국내 여론을 의식하는 상황의 일례이다. 따라서 여론조사기법이 1970년대 후반 도입되었을 때, 부르주아 사회과학의 일부로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방법의 여론조사기법이 다양한 주제로 시행되고 발전되었다. 셋째, 국내 여론이 대중들에 의해 표출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의 하나는 민족주의를 통해서이다. 민족주의는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의 국가 형성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 민족주의는 전통적인 중화주의와 결합하여 서구와 일본의 침탈에 대한 치욕을 극복하여 중화 문명의 강대국을 재건하려는 열망과 결합 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혁명과 문화대혁명이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도 부국강병이라는 전통적인 민족주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민족주의 열망은 시진핑이 직접 '중국의 꿈 용어를 직접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강대국화 과정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나 독일의 파시즘처럼 대외팽창적인 진화할 수도 있으며,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하여 대내적인 정치적 동의를 확보하는 이데올로기로 인식되고 있다. 개혁개방의 성공 과정에서 고무되는 중국의 민족감정은 광범위하게 읽히는 대중매체 물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1996년에 출판된 '중국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中國可以說不)'는 당시 중국의 2000년 올림픽 유치 실패, WTO 가입 문제, 이등휘의 미국방문과 대만 문제, 티베트에 대한 미국 지원 등과 관련하여 미국 음모론을 제기하였는데, 대중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하여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1990년대에서 현재까지 중국의 대중문화에서 민족감정을 자극하여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매우 많은데, 이러한 대중 매체물은 중국의 민족주의를 한층 고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일련의 매체물 중에는 서구의 문화를 수용하는 자유주의적 흐름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보수적 경향의 흐름이 존재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개혁개방 이후 서구의 모든 문화를 조건 없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천안문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서구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중국적인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보수주의적 경향은 북경대학에서 전통문화 연구소 신설과 학술지 발간,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의 공자 사당 복원 등 유교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 상업적 조명을 하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직접적으로 중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주는 국내 여론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중국인에게 쉽게 연상되는 남경대학살 혹은 중일전쟁 등 일본에 대한 잔혹한 이미지는 중국 정부가 대일본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디 아오 위(혹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중국 정부는 수위를 넘어서는 학생들의 시위를 통제하는 노력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냐하면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며, 외교적인 채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다. 미·중 관계 역시 민족주의적 대중여론의 영향을 받는 영역이다. 미·중 관계는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통한 강대국화와 안보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시되는 외교적 현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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